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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공예

문화와 과학이 있는 집 이야기/1.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 엣날 집들

<1> 산 등지고 물 바라보는 '최고의 보금자리'


이 상 해(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편히 쉬면서 가족끼리 정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답고 안전한 좋은 집을 짓기 위해 온갖 지혜와 기술을 다했습니다. 따라서 집에는 그 시대까지 쌓아 온 최고의 문화ㆍ예술과 과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 전통의 초가ㆍ기와집을 중심으로 집 속에 어우러져 있는 조상들의 슬기와 얼을 찾아 보는 <문화와 과학이 있는 '집' 이야기>를 새로 연재합니다. 집필은 고건축의 권위자인 이상해 교수가 맡아 재미있고 깊이 있는 글을 써 주게 됩니다. /편집자 주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면서, 어린이들도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정말 어림없었겠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또는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거나 인상적인 장면을 만나는 대로 그때그때 사진을 찍어 기념물로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은 대상 중에는 옛날 기와집이나 초가집이 있는 곳도 포함됩니다. 이러한 옛날 집들을 찍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것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 촬영 전문가도 아닌데 옛날 집들을 찍으면 사진이 뜻밖에 잘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나라의 옛날 집들은 사진발을 잘 받습니다. 사진이 잘 찍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 가운데 하나가 사진을 찍는 대상물의 구도가 잘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보기 좋을 테니까요. 보기가 좋다는 말은 사진이 잘 나왔다는 말입니다.

 


옛날 집들이 사진발을 잘 받는 이유는 집들이 그 터와 둘레에 어울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도가 잘 잡힌 사진으로 나오는 것이지요.

 

 




완만한 산 기슭에 마을 터 잡아

 


우리 나라의 옛날 집들은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유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도 그 주변의 산ㆍ들ㆍ강ㆍ길들과 잘 어울려 아름다운 정취를 풍긴다. /사진 제공=황헌만(사진 작가)




 

 

그 곳에 앉았기에 오두막집도 아름답게 보인다고 할까요. 이러한 우리 나라의 집들을 두고 주변 환경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하지요. 이 점이 바로 우리 나라 집들의 특성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선조들이 이 땅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살면서 쌓아 온 문화가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기 편하고 아름다운 집을 지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이룩한 과학 기술과 정신이 배어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문화와 과학이 있는 우리 나라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집 짓는 일은 사람들의 삶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통 중의 하나입니다. 오랫동안 이루어져 온 전통이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의 집에는 저마다 다른 살기 좋고 아름다운 집에 대한 생각과 지혜가 배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의 옛날 집에도 조상들이 집을 지으면서 터득한 생각과 지혜가 깊이 배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으로, 주어진 자연에 조화하도록 터를 잡아 집을 지은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조상들은 무엇보다 먼저 자연 환경을 고려하여 집터를 잡고, 건물을 배치하였습니다.

 


초가집들이나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루어진 우리 나라의 마을들은 완만하게 경사진 뒷산에 기대어 터를 잡고 있습니다. 이런 마을들은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듭니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치 아기가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안온하고 보기에도 그지없이 편안합니다.

 


이렇게 산기슭에 마을 터를 잡고 집을 세운 까닭은 우리 나라엔 산이 많기 때문입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습니? 외국인들과 같이 여행을 하면 한결같이 한국은 정말 아름다운 산이 많다고 놀랍니다.

 


이렇게 많은 산은, 먼 옛날부터 조상들이 자연관을 이루고 삶을 일구어 가는 데에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한국인들이 자연과 함께하는 지혜를 터득케 하였습니다. 이렇게 자리잡은 우리 나라의 마을과 집에는 그를 에워싼 자연 환경에 대한 정서가 스며 있습니다.

 


산자락에 세워진 집에서 앞을 내다보면 자연스럽게 멀리 있는 강물이나 건너편 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를 두고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되었다고 합니다.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되었다는 것은 서로 잘 어우러졌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자연과 조화하며 하나를 이루는 점이 우리 나라 마을과 집들의 특성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뒷산·앞 개천은 농사에 큰 도움

 


이와 같이 우리 나라의 마을들은, 산이 마을 뒤를 두르고 앞은 트여 있어서 겨울철에는 차가운 북서 계절풍을 막아 주며, 여름철에는 시원한 남동풍을 받아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마을이나 집은 해가 내리 쬐는 시간이 길고 빛이 잘 들어 따뜻하고 밝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생활에 필요한 땔감이나 나물을 마을 가까운 곳에서 구해야 하던 옛날에 뒷산은 땔감을 수월하게 구하고 산나물을 뜯을 수 있는 요긴한 곳이었으며, 마을 앞 논밭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산에서 흘러내린 유기물질과 토양으로 기름진 땅이 되었습니다.

 


또,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은 생활 하수를 처리하는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으며, 논밭을 감싸고 흐르는 하천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주는 일을 성실히 맡았습니다. 이러한 곳에 터를 잡아 마을을 만들고 옹기종기 집을 배치하고 지은 기술은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한 자연 환경을 이용하는 지혜의 산물입니다.

 

 

 

 





◎ 이상해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건축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건축ㆍ조경 및 토목공학부장이며,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대한건축학회 학술상ㆍ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저술상을 받았고, 지은 책으로 ‘한국건축사’ㆍ‘한국의 세계 문화 유산’ 등이 있습니다.



소년한국ㅣ 2005-03-03 1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