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한옥, 여덟 개의 힐링 정원을 품다.
집이 사는 이의 취향을 반영한다면 정원은 가꾸는 이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다. 지난봄 계동길로 이사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는 백 살 한옥의 정원에 어떤 손길을 더했을까. 가꾸는 이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그의 힐링 정원 이야기.
정원을 꾸미기 위해 양태오는 제일 먼저 인사동에서 돌확을 구입했다. 마당 곳곳에 돌확을 놓고 수생식물을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계절 동안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연이 드디어 촬영 며칠 전 꽃을 피웠다 한다. 대차게 올라오는 연꽃 봉오리를 보며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모우리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양태오는 부모님과 함께 지난해 봄 계동길의 백 살 한옥으로 이사했다. 지난달 '모던 개조 일지'를 소개한 데 이어, 이번 달에는 그의 한옥 속 정원 라이프를 소개한다.
사계절의 흐름을 담다
대문을 여는 순간, 다정한 정원의 풍경에 오감이 부풀어 오른다. 정갈한 건물 어디를 보든 꽃과 나무들이 마치 제집인 양 향기를 내뿜는 풍경이라니! 크고 작은 것, 숨은 곳까지 합해 모두 8개의 정원, 지난 4개월여 동안 식물들은 새집의 마당에 완벽하게 적응한 듯하다.
"이 집의 정원은 평창동에서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만든 것입니다. 마당 있는 집에 살아보니, 사계절 풍경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주인이 애써 꾸미지 않아도 계절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마당을 만들려고 꼼꼼하게 식물 배치를 고민했습니다."
디자이너 양태오가 제아무리 모던한 실내 공간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정원 디자인에 있어서는 문외한이었을 터. 하여, 그는 전통 가옥의 정원이라는 정원은 여럿 구경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오히려 '한국식 정원'을 만들겠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집 근처 5백 평(약 1,815m²) 한옥인 한씨 가옥을 방문했더니 정원이 너무 소담하더라고요. 마침 봄이어서 풀꽃들이 저마다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는데, 순간 두꺼운 책은 던져버리겠다 마음먹었어요. 형식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집과 잘 어울리고 집주인이 좋아한다면 마당에 꽃과 나무를 들이는 본래의 의미가 충족되는 것 아닐까요?"
봄이면 윗집 능소헌의 마당에는 매화가 피고 진달래, 라일락이 뒤를 잇는다. 요맘때 여름 꽃 작약과 수국을 실컷 즐기고 나면 가을까지는 작은 들꽃들이 피고 지며 집 안에 컬러를 더할 것이다.
조경 전문가들의 이론과 형식을 벗어나, 집주인으로서 1년 내내 마주할 좋은 풍경을 고민한 덕분에 자연이 주는 위안을 받게 된 터. 그가 '힐링 정원'이라 칭하는 여덟 마당은 이러한 노력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다.
1_꽃씨가 날아와서 스스로 움이 튼 것처럼 보이는 야생화들.
한국의 야생화들을 구하기 위해 정원 전문가를 시골로 급파하기도 했다고.
2_장독대 정원에 핀 야생화. 마치 오래전부터 이 집에서 자란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3_뒷마당의 정원은 이탈리아의 세련된 마당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바닥에 흰 자갈을 깔고 하얀 자작나무를 심어 모던하고 정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4_물확에는 수생식물과 금붕어가 산다.
5_백 년 전 이 집이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있었다는 소나무 덕분에 아랫집은 청송재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래서 나이 먹은 소나무를 그대로 두는 대신 나무 사이에 동그란 돌을 깔고 산뜻한 오솔길을 만들어주었다.
6_청송재 마당에는 마치 섬처럼 물확을 따로 떨어뜨려 놓았다.
비 오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물확을 두고 흙과 이끼를 깔아준 것이다.
모던 디자인이 더해진 정원 이야기
한옥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뒤, 디자이너 양태오의 화두는 단연 '전통과 현대의 조화'였다. 이는 정원에서도 마찬가지. 한국 전통 수종의 나무를 심고 시골에서 공수한 야생화들로 마당을 단장하면서도 그는 무언가 자신만의 세련된 감각을 가미하고 싶었다고 한다.
"청송재나 능소헌 모두 나무 주변으로 돌담을 두르지 않았어요. 경계선을 지어 마당이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는 것을 막고 싶었거든요. 대신 나무와 풀 주변에 이끼를 깔아 마당의 돌바닥까지 마치 자연스러운 능선이 생긴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작은 디테일의 차이, 모던한 디자인적 감각은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예컨대 장독대의 이끼 정원에도 오솔길 같은 작은 길을 만들었고, 뒷마당의 자작나무 정원에는 마치 이탈리아 해변에서 옮겨온 듯한 하얀 자갈을 깔아 세련된 풍경을 연출했다.
작은 공간 하나도 집주인의 아이디어와 감각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이 집에 이사 온 뒤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즐거움에 새로이 눈뜨는 중입니다. 매일 물을 주고, 솔방울을 줍느라 몸은 바쁘지만, 오히려 머리는 복잡한 일을 잊고 쉬게 되거든요."
백 살 한옥을 단장하느라 바쁘다면서도, 그는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정원을 만드는 동안 현대적 공간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말한다. 디자인의 지평을 넓혀갈 그의 미래를 사뭇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1_윗집 능소헌과 아랫집 청송재를 잇는 길목.
2_장독대에 흙을 깔고 독특한 이끼 정원을 만들었다. 마음 편히 오르내릴 수 있도록 오솔길을 만든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멋진 그림이 그려진 해주 항아리를 올려서 더욱 멋스러운 코너가 완성됐다.
3_청송재 게스트 룸 옆에 숨은 정원. 길가에 접한 꽃담은 전 주인이 담쟁이덩굴로 가려두었던 곳이다.
이사한 뒤 담쟁이덩굴과 키 큰 나무를 거둬내고 꽃담이 주인공인 소담한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기획_홍주희 기자 사진_전택수ㅣ레몬트리 2012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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