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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이야기/온고이지신

한국건축의 조형

   건축의 조형미는 여러 가지로 분석되고 측정되어 결론에 도달된다. 말하자면 건축이 놓여지는 주변환경이라던가 건축자체가 갖고 있는 형태나 색상들, 그리고 이들 형태와 색상에서 나타나는 대비, 반복, 비례, 조화 등등 여러 가지 조건드리 분석되고 파악되어야만 전체적인 평가기준이 도출되게 된다. 그렇지만 원래 미적인 요소 외에 인간생활의 용기로서의 실용적인 근본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단순히 심미적인 견해만으로 고찰해 나가는데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건축미의 분석에는 개개인의 접근방법이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수학의 공식과 같이 평가방법 수치를 대입하여 미적요소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없는 형편에 있다.  

 

 

 

   우리나라 건축에서 그 조형미를 고찰해 나가는 데에도 역시 어려운 점이 따르고 있다. 한국의 건축미를 처마곡선에서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연과의 조화에서 찾기도 하고 구부러진 기둥이나 보의 자연재 그대로의 형태에서 그 특색을 찾기도 하였다. 따라서 한국건툭의 조형미는 곡선의 미, 자연순응의 미, 자연지향의 미로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고 이러한 미적 요소드를 포괄해서 조작없는 자연서 , 무기교의 기교성 또는 비정제성, 무관심성 등으로도 표현하였다.

 

   한국건축은 일반적으로 자연과의 대응에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으려 한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실레는 특히 산산의 배치에서 볼 수 있는데 자연지형에 알맞은 축을 여러 개 두어 자연지세에 거역함이 없도록 하였다. 경북 영주 부석사나 경남 합천 해인사, 전남 구례 화엄사 등에서 이러한 좋은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연지형의 원형유지 원칙과 지형에 따른 굴절축이나 평행축 등에 의한 건물배치는 인공조경의 조작이 불필요하게 되었고 처음부터 아예 조산이나 정원수 따위는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실증자료는 한국 민족의 얼굴이고 마음이라 할 수 있는 주택건축의 택지 선정과 활용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주택은 사면으로 둘러싸인 자연 그대로가 주택정원이 되었고 자연 한구석의 큰 소나무 한 그루가 그 주택의 정원수로 차용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울타리 안에 자연 아닌 자연모방을 배격하고 울넘어 자연을 울안으로 끌어들이는 지혜를 짜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한국건축의 생리는 자연속에서 생활하기를 갈망하였던 한민족의 심성이 노골적으로 표출된 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건축공간 내에서가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는 인공물과 자연과의 조화에도 조형적 구상이 작동, 자연과의 어울림에서 자연이 인공의 건축물을 포용해서 서로 공존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결국 한국건축에서 입지선택은 곧, 자연으로의 귀환이며 귀속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귀환, 자연귀속 때문에 한국건축의 이해와 판단은  좀처럼 쉽게 우리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 건축의 이해는 여러번 두드려야 비로소 자신의 문을 열어 자기소개를 하는 그러한 큰 멋과 깊은 내용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사찰이나 궁전 건축과 같은 권위위주 건축과 주택에서의 정전, 정단, 안채를 한꺼번에 노출시키지 않는 평면 배치형식에서도 알 수 있다. 산사의 경우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정전까지의 도달과정에서 보면, 해탈문, 천왕문, 북문 등의 통과 경로없이 정전에 쉽게 접근되지 않으며, 이러한 경우는 궁궐건축의 배치형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한국건축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주택의 경우, 행랑문의 대문을 통해 중문에 다다르게 되고 중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가게 되는 배치형식이 일반적인 예이다. 이때 대문과 중문의 배치는 서로간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도록 축을 달리해 엇비껴 배치하여 안채가 대문에서 들여다 보이지 않게 하였으며, 중문과 안채의 대청도 일직선상의 배치를 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배치는 소위, 비정제성이나 비대칭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배치원리는 한국건축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비정제성 원리는 입면상의 조화나 대비와도 결부되는 조형미 원리와 결부시킬 수 있다.

 


 

   이러한 예는 경주 불국사의 평면과 입면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국사의 경우 평면배치형식이 교리에 의해 대웅전 일곽이 동쪽에 위치, 현세적 평면이 되고 극락전 일곽은 서쪽에 배치, 대웅전 일곽보다 한단 낮추어 미래지향의 평면이 되었고, 대웅전 북쪽에는 한단 높게 비로전 일곽을 만들어 과거의 공간으로 잡아 삼차원적 시간성을 평면자체에 부여하여 주고, 입면에서는 대웅전 앞 석탑 배치에서 동쪽에 다보탑, 서쪽에 석가탑을 세웠는데 다보탑은 석가탑에 대응해서 부드럽고 곡선이 많은 여성적 조형물이 되게 하였으며, 석가탑은 다보탑에 비해 단순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남성적 조형물로 만들어 서로간의 균형이 상대성을 갖도록 조형되었다. 그런데 이 다보탑과 석가탑의 깨어진 듯한 균형조절은 자하문, 즉 중문의 동과 서에 세워진 좌경루와 범영루의 석주에서 조정되었다. 

 

   좌경루의 석주는 석굴암의 전실과 현실 사이의 연도 끝부분에 세운 팔각석주와 동형의 것으로 팔각석주 중간부분에 연화문 중대석을 놓아 단순하게 처리하였음에 대해, 범영루의 석주는 구름형 석주로서 동쪽 좌경루에 비해 복잡성을 띠게하여 결국 회랑 안쪽에서 두 탑, 석가와 다보탑에서 질서와 통일성을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비정제성 내지 비대칭성에서의 질서와 통일성은 건축과 건축사이에서 뿐이 아니라 자연과 건축이 서로 대비 조건이 될 때에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크게 보아 도시계획적인 측면에서도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암시해 준다. 이 예를 경복궁에서 찾아보면, 우선 주요 건축물들은 주산인 백악에 대해 그들 지붕마루의 선처리가 수평적, 즉 정적방향인데 비해 주산인 백악은 수직적인 동적방향의 흐름이며 서쪽의 인왕산에 대한 주요 건물들의 지붕처리는 수평에 대한 수직의 대비를 이룩해 조화있는 공간처리를 하였다. 이러한 예는 한국건축에서 그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수평과 수평, 수직과 수직 등의 질서나 통일성의 반목에도 적지않아 그때 그때의 주변화경과 대상 건축물간의 상호 연계성이 크게 조형심리를 작용시켰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건축의 입면관은 건축군간의 균형도 균형이려니와 독립돈 단일 건물에서도 그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목조건축의 경우 기단과 축부, 그리고 지붕은 서로간에 이질적인 재료들로 구성되어 자칫 비례를 잘못 잡으면 부조화, 불균형의 추물로 전락하기 쉽다. 

 

   목조건축의 정면과 비례는 대개 옥개 높이와 축부를 1대1로 잡는 경우가 많으며 축부와 기단고 비례는 건축물이 놓이는 지형과 지세에 다라 비례의 기준이 일정치 않으나, 권위건축일 경우 기단고 비례는 축부에 비해 강하게 나타나고 사사로운 건축물일수록 약하게 잡고 있다. 또한 건물의 연면적이 커지고 건물고가 높아질 때에는 월대라는 완충공간을 두어 건물의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연결시켜 주는 역하도 하였고 독립건물의 위용도 돋보이게 하였다.

 

   축부의 조형처리에도 세심한 배려가 기울여졌다. 즉 공간의 크기 설정, 기둥 높이의 조정, 기둥의 안쏠림 기법, 이와 같은 세부기법에서는 주로 의장적인 면과 역학적인 안목에 힘을 기울였다. 주칸은 건물 중앙에 놓이는 어칸을 가장 크게 잡고 양측 협칸으로부터 퇴칸쪽으로 가면서 차차 주칸 크기를 어칸보다 짧게 잡아 입면상 안점감을 주도록 배려했다.

 

 

   기둥의 높이는 주칸 크기 설정과 반대로 중심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어칸의 중심 기둥 높이보다 길게 하여 귓기둥에서 가장 높게 하였다. 이러한 기법을 귀솟음기법이라 한다. 이 기법은 착시로 인한 축부 및 건물전체의 불안정함을 교정하기 위한 첫째 이유가 되었으며, 둘째 이유로는 주칸 크기의 변화와 기둥 높이의 변화로 시각적 무권태와 대비의미를 추구함이 그 목적이었을 것이다.

 

   안쏠림기법도 솟음기법과 동일한 목적추구에 있었다고 할 수 있으나 이 기법은 역학적인 고려도 함께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기법의 일종이다. 기둥의 안쏠림기법은 오금기법이라고도 하는데, 외두리기둥을 건물 내부쪽으로 약간씩 기울여 세우는 기법으로 기둥뿌리에서 기둥머리가 기우는 정도는 주칸 수와 기둥 높이에 따라 기울기 차이가 일정하지 않다. 이렇게 외두리기둥의 기둥머리를 건물 안쪽으로 기울임으로 해서 입면관이 엄격히 말해, 사다리꼴로 되어 결국 견실하고 안정되게 보이며 역학상으로는 축부의 뒤틀림을 방지해 주는 역할도 하였다. 이 기법은 비단 목조건축에서만 보이는 기법이 아니라 삼국시대의 석탑을 비롯해 면면히 전수되어 내려왔다. 백제의 익산미륵사지석탑 석주와 통일신라시대 석탑들 대부분에서 흘림기둥이나 솟음기법 그리고 안쏠림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건축에서의 의장적 기법은 여러 부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우선 입면처리의 예를 들어보면, 누각의 경우 흔히 난간이라는 장식부재를 많이 볼 수 있다. 이 난간부재는 기능상 누각에서 사람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설치된 시설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외관상으로는 의장재가 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 난간은 대부분 아래 윗층의 중간 부위에 설치되는데 이는 아래 윗층 사이의 불협화를 슬기롭게 감소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아래층 기둥을 돌기둥으로 하고 윗층기둥을 나무기둥으로 사용한 정자나 누각건물에서는 돌과 나무라는 이질재의 부조화를 크게 격감시켜 주는 장식적 효과를 나타내어 건물을 보다 균형있게 조형미로의 추구에 다다르게 하였다.  

 

 

   경복궁의 방지에 세워진 경회루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남원 광한루, 삼척 죽서루 등 수많은 실례에서 접할 수 있다. 불국사의 자하문 앞 대석단 하층의 축석공법을 보면 지면으로부터 석축을 쌓기 시작하였는데 이들 석축은 자연석 그대로를 사용하였다. 이는 윗층 축석인 대석단이 인공석재를 사용한 것에 비교되는 축석공법으로서, 이는 자연의 지면에 인공물의 설치가 부자연함을 상쇄시키기 위한 완충적 의장효과를 발휘한 신라인들으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연물 위에 곧바로 인공물이 놓였을 때의 부조화를 중간층에 자연석축을 쌓음으로 해서 조화미를 낳게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목조건물을 지을 때 초석을 자연의 모습 그대로 사용하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초석 높이를 고르게 하지 않고 상면도 다듬질되지 않은 위에 그랭이된 기둥을 세웠던 원리와 같다. 이러한 기법 또는 수법을 조작없는 자연성이라던가, 기술적인 완벽에 대한 무관심성 또는 무계획성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말하고 있느나, 이는 무관심이나 무계획에서 나온 소산이 아니라 오히려 관심과 계획성이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서 나타낼 수 있는 넓고 깊은 멋의 기법이나 수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한국건축 세부에서 잘 입증되고 있다.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이나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 경복궁의 근정전, 그리고 창덕구의 제전과 후원 건물들에 보이는 대들보의 치목한 솜씨나 공포의 첨차부재 세부, 화반의 조각기법 등 자그마한 곳에서도 소홀함이 없었음을 알 수 있으며, 측히 삼국기, 통일신라기의 석조건축 세부에서 보여주는 치밀성은 한측 더 이를 증명해 준다.

 

   또한 의장의 효과는 가구 구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대 건축론에서 흔히 사용되고 잇는 최적의 구조재가 최상의 의장이라는 이론에 부합되는 가구형식을 한국건축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첨성대의 곡선처라라든지, 수덕사 대웅전의 가구, 부석사 조사당의 내부공간 구성에서 더 넣지도 뺄 수도 없는 가구형식을 실례로 들 수 있다.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한국건추그이 조형미 뿌리는 결국 깊고도 큰 멋을 지향한 자연으로의 귀환을 목표로 삼고 숙련과 경험을 토대로 한 달관된 조형의식에 있었다고 생각해 봄직하다. 

 

 

 

출처_문화재대관 국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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