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생활/목공예

<TV쇼 진품명품>의 감정위원 양의숙의 골동 이야기

   

      

 전통은 변화해야 하는 것


지난 40년간 여한 없이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해 지냈다는 양의숙 씨. 고미술 화랑 예나르는 그 열정의 시발점이다. “대학원 졸업 논문으로 반닫이 장식 문양의 변천사를 썼어요. 제주도에 있는 반닫이 5백 개를 실측하고 소장자를 인터뷰했는데 결과물이 무척 흡족했지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한국의 민가를 답사하며 조수 역할을 자처했어요. 답사에 따라가서 마음에 드는 골동품이 있으면 하나 둘 모으다 보니 나중에는 공예점을 차릴 정도로 양이 꽤 되더라고요.” 보수적인 남편도 옛 물건에는 관대했다. 답사를 갔다가 일정보다 일찍 돌아오면 백발백중 뭘 하나씩 들고 오는데, 바로 여비로 장만한 골동품. 당시 살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온통 고가구와 고미술품으로 가득 찼으니, 아들 친구가 놀러 오면 “민속촌에 온 것 같다”며 말했을 정도.

고미술이 좋아 골동품을 모으고, 고가구 숍도 열었지만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장사와는 구분되는 그만의 원칙이 있다. 팔기 위해서 물건을 사본 적이 없다는 것. 이건 이것대로, 저건 저것대로 먼저 내 마음에 들어야 누구에게든 그 물건의 가치를 피력할 수 있지 않은가. 살 때는 그저 좋아서, 남의 손에 갈 때는 자식 보내듯 마
음이 찡하던 그의 진정성을 알아보았는지, 단골손님이 하나 둘 늘었고 유일하게 고미술품을 감정하는 TV 프로그램의 감정 위원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예나르라는 이름으로 고가구를 제작했다.


(왼쪽) 사랑채 2층에서 후정을 바라본 모습.
(오른쪽) 안채 대청마루와 동쪽 대문을 잇는 정원은 곶자왈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새벽 안개가 자욱할 때면 신비로운 감동이 밀려온다.

 


“전통 가구를 오랫동안 고증하다 보니 현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몇천만 원짜리 골동 가구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또한 한옥도 생활이 달라진 걸 반영해 입식 부엌, 입식 화장실을 적용하는 것처럼 가구 역시 현대 주거 공간에 맞게 비례와 소재가 바뀌어야 하고요. 대청마루의 삼층장은 옛 모습을 재현한 리프로덕션 제품으로 소재, 문 크기 등에 변화를 줘 수납 가구로서의 쓰임을 더했지요.” 리프로덕션 사업을 시작한 지 5~6년이 지났지만 공장은 따로 두지 않았다. 가구를 잘 짜는 장인, 칠을 잘하는 장인, 장식을 잘 만드는 장인이 모두 따로 있다는 것. 조각, 칠, 장식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니 예나르 리프로덕션 가구의 완성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요즘 그의 바람은 외국의 가구 박람회에 참여하는 것. 2011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에 출품한 민화장처럼 해외의 컨템퍼러리 가구와 견주어도 경쟁력 있는 예나르만의 독특한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꿈은 대를 이어 딸 김호연 씨가 실현하고 있다. 이화여대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독일계 가구 회사 스튜디오 비카에서 근무하다 현재 예나르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그는 전통 가구에 젊은 감각을 접목해 아름다운 미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1 가구를 고민하기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벽장을 갖추는 것. 벽장 안에 TV와 책장을 넣고 옷을 수납한다.
2 반질반질 고운 손 때가 앉은 작은 반닫이는 아이를 키울 때 배냇저고리를 보관하던 가구. 친정어머니가 제주도에서 구해 보내준 것이다.
3 대청마루 한편에 자리한 삼층장은 예나르에서 제작한 리프로덕션 제품. 제주에서 물을 길어 나를 때 쓰던 허벅을 올려 장식했다.
4 일곱 살 난 손녀 윤우 양은 할머니와 제주 한옥을 찾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단다. 연못 안 올챙이를 구경하고 잡초도 같이 뽑으며 “건강해지려고 한옥에 와요”라는 예쁜 말로 할머니를 뿌듯하게 한다고.
5 제대로 만든 한옥의 문은 그 자체로 예술품이라는 말이 있다. 밝고 푸근한 한지의 느낌과 단순하고 간소한 살대가 어우러져 한옥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6 결혼할 때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버선.
7 우리나라 전통 상차림인 1인 1상을 위한 소반 컬렉션. 통영반, 나주반, 해주반 등 상판 모양과 다리 생김, 용도에 따라 이름이 다른 다양한 소반을 부엌 한쪽 선반에 조르르 두었다. 습기에 강하고 가벼운 은행나무 소반을 으뜸으로 친다.



한옥에서는 저절로 자연 친화적 삶을 살게 된다는 양의숙 씨. 선장헌에서 지낼 때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마당에서 보낸다.

 

 


양의숙의 골동 이야기


“<TV쇼 진품명품>에서 한 주는 출장 감정, 한 주는 스튜디오 촬영이 잡혀 있어 마음 편하게 해외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요. 휴대폰 두 개가 잠시도 쉬지 않고 울려대지만, 그래도 저지리에서 맞는 아침은 찬란해요. 새벽녘의 꼬끼오 소리, 햇살처럼 따스한 새 지저귐, 가끔 동네에서 방목하는 말이 마당까지 들어올 때도 있어요.” 이 세상에 자연만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 또 있으랴?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조경, 나무 한 그루를 심더라도 자기 위치를 잡아 주기 위해 수도 없이 고민하고 식구들과 생각을 나누다 보니 한옥에 머물 때는 종일 흙일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몰입의 가치를 만끽할 수 있는 진정한 쉼, 그게 바로 제주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제주에서 서울로 갈 때 몸은 피곤하지만 머리는 맑은 것도 이러한 이유. 시간이 좀 더 여유로워지면 서울에 아담한 두 칸짜리 집을 짓고 절반은 이곳 선장헌에서 보내고 싶단다.

그러고 보니 국내 유일의 고미술품을 감정하는 TV 프로그램의 감정 위원이라는 타이틀이 그를 수식한 지도 어느덧 17년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골동품이라 부르는 고미술품의 가치를 재조명해 그 진가를 밝히는 것이 지금까지의 그의 몫이었다면, 이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매듭을 짓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터. 그는 문화 불모지인 제주에 공예의 가치를 담고 전통미의 원형을 찾아 현대에 접목하는 일, 옛 장인의 뛰어난 솜씨와 미의식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이 자신의 남은 소명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건 전시 <양의숙의 골동 이야기>를 통해 고미술과 함께한 40년 인생을 회고할 예정이다. 큰아이를 낳았을 때 친정어머니께서 배냇저고리를 넣어두라고 선물하신 애틋한 반닫이, 쌀벌레 걱정 없던 뒤주, 설거지를 마친 그릇이나 찬을 넣어두는 찬장 등 직접 사용하던 생활 목가구를 비롯해 장식 없이 직선으로 정제된 형태의 선비 가구, 민속품 등 1백여 점의 ‘진품명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어떤 일을 매듭지을 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붙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과오나 실수 없이 스스로에게 자신 있다는 뜻일 터. 양의숙 씨의 삶을 들여다보니 문득 스콧 니어링의 날마다 삶을 꾸리는 몇 가지 원칙이 떠오른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의 땅을 느껴라’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 씨실과 날실 같은 나날의 삶이 이어져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면, 그 나날의 삶을 어떤 일을 하면서 꾸리는가가 중요하다.




 

1 기본형 이층장에 옻칠을 하고 경첩과 감잡이, 앞바탕을 둥근 유기 장석으로 장식한 장. 검자줏빛 바탕에 금빛의 크고 작은 동그라미 장식이 시각적인 즐거움과 함께 세련된 이미지를 더한다. 조선 19세기.
2 그릇을 올려두는 삼층 찬탁. 부엌 가구는 굵은 기둥과 두툼한 선반을 사용해 견고하고 실용적으로 만들었다.
3 한 사람이 들고 나르기 적당한 크기의 작은 상자류를 통칭해 함이라 한다. 뚜껑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경첩을 달고 자물쇠를 채울 수 있게 잠금장치를 만든 조선 19세기 서류함.
4 제주에서 살래라 부르는 찬장. 설거지를 마친 그릇을 엎어두거나 찬을 보관하는 용도로 썼다.
5 자개로 장식한 화려한 이층장, 나전이층농. 19세기 작품이다. 백동나비경첩으로 단조로움을 덜었으며 가늘고 긴 자개실을 끊어가며 섬세한 문양을 만든 장인의 솜씨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