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양의 유형과 특성
세계 어느 곳에서든 문양은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 자연적인 요소에서부터 기하학적 요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국 문양의 경우 자연에서 쉽게 발견되는 꽃이나 열매, 새 등의 식물은 물론 용, 봉황, 사자, 사슴 등의 영물들에 이르기까지 그 소재가
매우 다양하며, 여기에 기하학적 형상들이 보조 문양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또한 비천, 가릉빈가(불경에 나오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가진 상상의 새), 보상화 등 종교적 색채가 강한 것 에서부터 복을 기원하고 평안을 염원하는
길상문양, 악귀와 잡귀신의 침입을 막아준다는 벽사 의미의 기린, 봉황, 인면 등도 자주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문양을 단순히 미적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종교적 내세관은 물론,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함축한 상징성을 통해 영원한 평안과 번영을 소망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았기 때문이다.
비천문이 새겨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성덕대왕신종(좌)과 탁본(우) ⓒ 국립중앙박물관
문양은 사물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소재의 특징에 따라 동물문, 식물문, 인물문, 바위문 구름문, 번개문, 소용돌이문, 문자문, 기하학문 등 무수히 많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의미와 상징적 기능에 따라 길상문, 벽사문, 장식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때문에 문양의 소재에 따라 지역적이거나 문화적인 특성을 구분하기는 힘들며, 대체로 그 문양이 사용되었던 시대와 가치관, 습관과 정서, 미의식에 따라 독특한 특징들이 나타나게 된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문양의 유형을 크게 구분해 보면, 단독형식, 연속형식, 기하학적 형식 등이 있다. 단독 형식은 연화, 국화 등을 활짝 핀 꽃의 모양으로 표현하는 로제트(rosette) 형식의 문양과 새나 짐승 또는 곤충류 등을 단독으로 표현한 문양을 말한다. 연속형식이란 식물이나 동물, 곤충류 등을 연속적으로 전개시킨 문양으로 당초문 계통을 말한다. 그리고 기하학적 형식으로는 번개, 동심원, 파상형 등을 문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외에 혼합형식 문양으로 동식물이나 기하학적 단위 문양을 혼합하여 색다른 형식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한국 문양의 특징적인 측면은 표현과 구성 방식에서 인위적 질서를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와 콤파스 같은 도구의 기계적 질서에 의해 표현한 문양이 드물다는 것이다. 물론 기계적 질서에 의해 구성된 문양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문양은 기하학적 모티브에 의한 몇몇 문양들을 제외하고는 대개가 여러 개의 개별 문양들이 합쳐져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동물문·식물문·구름문·당초문·문자문 등이 서로 어우러져 각각의 개별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 또는 각기 서로 다른 문양들이 어우러지면서 전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듯한 회화적인 표현들도 있다.
버드나무 문양이 새겨져 있는 고려시대 청동 병 ⓒ 국립중앙박물관
청동 병에 새겨진 버드나무, 바위, 갈대, 새 문양 ⓒ 국립중앙박물관
산문이 새겨져 있는 백제 시대 전돌 ⓒ 국립중앙박물관
따라서 현대의 한국 문양 표현에서도 단순한 문양 하나만을 가지고 연속적인 패턴을 만드는 경우가 아닌, 보조 문양이라든지 바탕문양을 조합해서 새로운 문양구성을 할 때에는 이러한 점을 특히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물에 있어서의 문양은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문양이나 바탕 문양이 서로 어우러져 전체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근대기에 들어 조형예술에서의 문양이란 주로 장식적 목적이라는 극히 좁은 범위로 축소되어 단순하며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다. 근대 이전까지는 문양이 장식적 목적보다는 의례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 많이 활용되었지만, 산업화가 지배하는 현대생활에서는 형태적인 단순함과 재현의 편리함을 쫓아 장식적 기능만 부각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대로 올라갈수록 문양의 성격은 상징성이 강한 추상적인 형식이거나 회화성이 강한 사실적인 형식들로 나타난다. 문양이 쓰이는 겻도 우선은 조형적 미감을 고려하였겠지만 사용 목적에 맞는 실용성과 종교성을 모두 갖추어야만 했다. 때문에 시각 조형 요소로서 문양을 활용할 경우 자칫 단순한 색채의 분포, 선과 면에 의한 시각적 점유에 불과하게 하여 내적 의미를 상실한 채, 기능적인 활용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한국 문화는 역사적으로 볼 때 발생문화가 아니라 수용문화였다. 그러나 지난 어느 시대를 보더라도 외래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전이·변용시켜서 고유한 특성으로 발전시켜 왔다. 삼국시대의 불교전래는 한국만의 토착화된 불교문화를 꽃피우게 하였고, 조선의 숭유정책은 성리학의 완성과 세련된 선비문화를 이룩했다. 그리하여 조형예술 분야는 물론 문양 표현에 있어서도 소재나 색, 기법 등도 본래의 모티브는 외래의 것이지만 그 세부 구성 방식과 표현양상은 한국인의 생활감정과 가치관을 반영한 소박함과 자연 순응적인 형식, 조화와 통일의 질서로 발전시켜 왔다.
·글 박현택(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팀)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